고난주간 묵상, 마 21:12-13 성전정화
다시 기도의 집으로
고난주간을 맞아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행하신 강력한 행동을 마주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1장 12절과 13절은, 겸손한 나귀의 왕으로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즉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는 사건을 전합니다. 이 본문은 단지 한때의 분노나 외적 정화 작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질서 회복에 관한 깊은 뜻이 담긴 메시지입니다.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마 21:12)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직후,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성전에 들어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행동이며,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 회복되어야만 참된 예배와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성전은 본래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죄 사함과 중보를 받기 위해 나아가는 중심지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눈에 비친 성전의 모습은 그 거룩함을 상실한 채 장사치들의 이익 추구의 장소로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성전 외곽, 특히 이방인의 뜰에서는 유월절을 앞두고 제물을 사고파는 일이 매우 활발히 일어났고, 이는 종교 지도자들의 승인 아래 높은 이윤을 남기는 구조였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 거룩한 자리가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본문에서 “내쫓으시며”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ἐξέβαλεν’(엑세발렌)인데, 이는 ‘강제로 쫓아내다’, ‘밖으로 던지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행동이 단순한 항의 수준이 아니라,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질서를 회복하시는 선지자적 행동임을 드러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을 자신의 아버지의 집이라 부르셨고, 그 권위로 거룩함을 다시 세우고자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속에서 익숙함에 젖어버린 제의적 행위, 형식에만 머문 종교성을 다시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유익과 안정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 성전에 들어오셔서, 뒤엉킨 탐욕과 위선을 둘러엎으십니다.
기도의 집에서 강도의 소굴로
예수님은 단호히 선언하십니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마 21:13)
여기서 예수님은 이사야 56장 7절과 예레미야 7장 11절의 말씀을 연결하여 인용하십니다. 이사야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전을 만민의 기도하는 집으로 삼으시겠다는 약속이며, 예레미야는 그 기도의 집이 외식과 불의로 가득 찼을 때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현실을 고발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두 말씀을 연결함으로써, 현재 성전의 실상을 지적하십니다. 겉으로는 예배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 그 안은 도둑질과 욕심, 외식으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강도의 소굴’이라는 표현에서 ‘강도’는 헬라어로 ‘λῃστής’(레이스테스)로, 단순한 도둑이 아니라 폭력적이고 조직적인 약탈자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이익 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을 의도적으로 더럽히는 행위를 뜻합니다. 단지 장사를 했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사적인 이득을 취하고, 이방인의 뜰을 막음으로써 구원의 문을 닫아버린 그들의 위선을 예수님은 책망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동일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예배당에 들어와 찬송하고 기도하지만, 그 마음 중심에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혹시 내 기도는 응답을 위한 조건으로 전락해 있지는 않은가, 예배는 의무감이나 사람들 앞의 체면으로 드리고 있지는 않은가. 성전은 기도의 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중보하며, 눈물로 부르짖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그 분노는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아버지 집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거룩한 질투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그 기도의 집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안의 기도의 영이 꺼져가고 있다면, 그 원인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다시 주님 앞에 엎드릴 때입니다.
엎으시는 주님, 세우시는 주님
본문에서 예수님은 단지 엎으시는 분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회복이며, 심판이 아니라 구속입니다. 그분은 부정하고 타락한 구조를 엎으신 후, 그 자리에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다시 세우십니다.
이 성전청결 사건은 고난주간의 시작과 함께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도 마지막까지 아버지의 집을 향한 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사건을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켰나이다’라는 시편 말씀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 열심은 단지 건물이나 체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참된 예배와 교제를 회복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도 주님이 엎으셔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세워진 자기중심적 경건, 형식적 예배, 조건적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빌린 이기심들. 주님은 그것들을 엎으시고, 진정한 기도의 자리를 다시 세우길 원하십니다. 그 엎어짐은 고통스럽고, 때로 내 삶을 흔드는 일이지만, 그것은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한 성도가 고백했습니다. “처음엔 주님이 내 삶을 흔드시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그 흔드심이 없었다면 나는 내 탐욕의 탑을 결코 무너뜨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엎으심은 은혜입니다. 회개하게 하시고, 다시 기도하게 하시는 주님의 열심입니다. 우리는 그 손길 앞에 순복해야 합니다.
결론: 기도의 집을 다시 세우라
마태복음 21장 12-13절은 예수님께서 고난주간에 보여주신 강한 메시지입니다. 그분은 온유하고 겸손한 왕으로 오셨지만, 하나님의 집을 더럽히는 죄악 앞에서는 단호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나약한 동정이 아니라, 거룩한 질서를 회복하려는 정의로운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이 분노를 통해 우리 안의 성전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은 과연 기도의 집인가, 아니면 거래의 장소인가.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신앙을 빙자한 자기 의의 공간이 되고 있는가.
고난주간은 다시 우리의 성전을 깨끗이 하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시간입니다. 그분이 뒤엎으시는 자리에서 두려워 도망치지 말고, 오히려 그 손에 붙들려 다시 기도의 집으로 회복되기를 소망합시다. 주님은 지금도 성전으로 들어오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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