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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묵상, 막 11:12-14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

하가다 2025.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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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없는 신앙을 향한 주님의 탄식

고난주간 둘째 날,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은 매우 상징적이고도 도전적인 말씀입니다. 이 짧은 본문 속에 담긴 의미는 단지 나무에 관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 상태를 정면으로 지적하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고난주간 동안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지를 깊이 묵상히기를 원합니다.

 

시장하신 예수님과 무화과나무 앞에 선 모습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막 11:12)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굶주리시고 피곤하시고 눈물도 흘리셨습니다. 시장하셨다는 이 표현은 그분이 참 인간이심을 드러내는 동시에, 곧 이어질 사건을 통해 더 깊은 영적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서론적 장치이기도 합니다.

 

이어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라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무화과나무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매우 흔한 나무로, 종종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됩니다. 구약에서도 무화과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의 영적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도구였습니다. (예: 렘 8:13, 호 9:10)

 

예수님은 잎사귀가 무성한 그 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기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무화과나무는 잎이 나기 전이나 동시에 열매가 맺기 때문입니다. 잎이 있다는 것은 이미 열매가 있거나 최소한 기대할 만하다는 신호입니다. 하지만 그 나무에는 아무 열매도 없었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나무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그대로 드러내는 영적 은유입니다. 겉보기엔 화려하고 경건해 보이지만, 정작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열매는 없었던 것입니다.

 

열매 없는 신앙을 향한 경고

예수께서 그 나무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막 11:14)

 

이 장면은 예수님의 공적 사역 중 유일한 ‘저주’의 사건입니다. 그분은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지만, 한 나무에 대해서는 단호히 ‘영원히 열매 맺지 못하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자연물에 대한 징벌이 아니라, 상징적 행위를 통해 영적 메시지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저주는 위선적 신앙에 대한 심판의 선언입니다. 열매 없는 신앙은 본질을 상실한 외식이며, 결국 하나님 나라에서 잘려 나갈 대상입니다. 이 사건이 성전 정결 사건 바로 직전에 위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통해 종교 시스템 전체의 부패함을 드러내시고, 그 뒤이어 성전에서의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심으로 그 심판을 실천하십니다.

 

‘열매’는 성경에서 하나님 백성의 삶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순종, 사랑, 공의, 성결 등을 의미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 요한복음 15장에서 말하는 포도나무 가지의 열매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단순히 종교적 행위로 포장된 신앙이 아닌,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삶이 열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신앙도 종종 잎사귀는 무성하지만, 실상 열매는 없는 상태에 머물 수 있습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마음은 멀고, 섬김은 하지만 중심은 자기를 위한 만족일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런 신앙을 향해 지금도 동일한 경고를 주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 진짜 열매가 맺히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본문 마지막에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는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에 대해 하신 저주를 제자들이 분명히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현장을 목격했다는 의미를 넘어, 그 의미를 곱씹고 받아들여야 할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아직 이 사건의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은 그들의 가슴에 남아, 며칠 뒤 성전이 무너지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후 비로소 온전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며 ‘제자들처럼 듣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귀에 들릴 뿐 아니라, 마음 깊이 각인되어야 합니다. 단지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회개와 결단으로 이어지는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고난주간은 단지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 신앙의 열매 없음을 슬퍼하며 다시 진정한 열매 맺는 삶을 회복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 말씀은 사역자와 교회 공동체 전체를 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큰 건물, 정교한 조직, 활발한 프로그램이 있어도, 그 안에 영적 생명과 열매가 없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무화과나무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은 껍데기가 아닌, 열매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고난주간의 주님을 따를 때,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때 비로소 맺히기 시작합니다.

 

결론: 지금은 열매를 점검할 때입니다

이 무화과나무 사건은 단순한 나무 저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난주간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는 그 길목에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남기신 영적 거울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나무입니까? 잎은 무성하지만 열매 없는 종교인의 모습은 아닙니까?

열매 없는 신앙은 결국 주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무서운 심판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 열매 없음을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 고난의 길을 걸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단지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무화과나무처럼 마른 나무가 되어 십자가 위에 달리셨습니다. 우리의 열매 없음, 위선, 겉모습뿐인 경건을 대신하여 그분이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주간은 회개의 자리요, 열매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잎사귀를 자랑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열매가 무엇인지 묻고, 그 열매를 맺기 위해 삶의 뿌리를 다시 주님께로 깊이 내려야 할 때입니다.

잎이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말이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모양이 그럴듯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심이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를 향해 다가오시며, 열매를 찾고 계십니다. 과연 나는, 우리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겸손히 서는 고난주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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