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종려주일, 예루살렘 입성
왕을 맞이하는 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신 그 날,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 외침의 깊은 의미를 진정 깨달은 자는 몇이나 되었을까요? 고난주간의 문을 여는 이 본문을 따라가며 우리는 예수님께서 진정 어떤 왕으로 오셨는지를 묵상해 봅시다.
준비된 순종, 준비된 길
예수께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러 두 제자를 보내시며, 한 마을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와 그 새끼가 매여 있을 것이니 풀어 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는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이 성취되기 위함이었습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시나니.”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의도된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예언의 성취를 넘어, 자신이 메시아임을 스스로 드러내신 공개적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결코 우연히 고난주간의 길에 들어서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향한 발걸음은 창세 전부터 예비된 길이었으며, 이 나귀는 그 준비의 일부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역을 위하여 큰 능력이나 탁월한 은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겸손하고 연약한 나귀를 쓰셨습니다. 사람의 시선에는 보잘것없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정결하고 준비된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순종이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요청되고 있습니다.
호산나의 외침, 그 뜻의 깊이
무리가 나귀를 탄 예수님 앞에 자기 겉옷을 펴고,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외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마 21:9) 이 외침은 시편 118편의 인용으로, 절기의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갈 때 부르던 찬송입니다. ‘호산나’(ὡσαννά, 히브리어 호시아 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간절한 외침입니다.
그러나 군중의 외침에는 오해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구원,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왕을 기대하며 ‘다윗의 자손’에게 환호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정복자의 말이 아니라 평화의 나귀를 타고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자신들의 바람을 투사하여 메시아를 받아들였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고자 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주님의 길, 십자가의 길을 따르고 있는지, 아니면 내 기대를 이루어줄 도구로 그분을 따르고 있는지 말입니다. 고난주간은 그러한 오해를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왕권 앞에 다시 무릎 꿇는 시간입니다.
겉옷을 펴는 신앙, 마음을 여는 제자
사람들이 자신의 겉옷을 길에 펴는 장면은 단순한 환영 이상의 상징성을 갖습니다. 겉옷은 고대 유대 사회에서 한 사람의 신분과 생존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벗어 길에 펴는 행위는 자신을 완전히 내어드리는 헌신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에 들어오시길 원하신다면, 우리는 우리의 '겉옷'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체면과 자존심, 과거의 상처와 자랑, 죄된 습관과 자기 의까지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종교적 형식이 아닌, 내면의 왕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진정한 헌신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의 겉옷은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한 종교 행위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겉은 믿음의 옷을 입었지만, 실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외식을 책망하셨고, 겉옷을 펴는 행위가 마음을 여는 진실한 믿음으로 이어지길 원하셨습니다.
사실 이 장면에서 제자들은 군중의 외침과 분위기에 묻혀, 예수님의 진정한 목적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신 이유가 고난을 향한 순종의 길이라는 사실을 제자들도 십자가 이후에야 제대로 깨닫게 됩니다. 신앙의 여정 가운데 우리는 얼마나 자주 주님의 뜻을 놓치며, 분위기나 감정에 휩쓸려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고난주간은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겉옷들을 다시 주님 앞에 내려놓게 합니다. 외식과 위선을 벗어버리고,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는 결단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왕의 길을 따르는 제자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승리의 퍼레이드가 아니라, 십자가를 향한 겸손과 순종의 행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곧 그 입술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게 됩니다. 주님은 그러한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기대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길의 시작 앞에 서 있습니다. 종려주일은 고난주간의 문을 여는 날이자,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는 기회입니다. 우리는 정말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 있는가? 우리의 겉옷은 주 앞에 내려졌는가? 혹시 여전히 내 욕망과 기대를 그분께 투사하며, 나만의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귀 한 마리를 준비하신 주님의 섬세하심처럼, 우리의 삶 속에도 하나님은 구속의 섭리를 정밀하게 준비하고 계십니다. 순종하는 자를 쓰시고, 겸손한 마음을 귀히 여기시며, 참된 왕권 앞에 무릎 꿇는 자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도 그 왕의 길을 따라 걸어가는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난주간의 묵상이 단지 일회성의 감정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어가는 제자의 걸음으로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 길에는 때때로 고난과 오해, 거절이 따르지만, 그 길 끝에는 부활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그 길, 그 나귀의 길, 그 겸손과 순종의 길을 우리도 오늘 따라 걸어갑시다. 왕이신 예수님은 여전히 나귀를 타고 우리의 마음으로 들어오고 계십니다. 어서 그 길을 준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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