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화) 말라버린 무화과 나무
말라버린 무화과나무, 마주한 진실
고난주간 셋째 날 아침, 제자들은 전날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버린 것을 목격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0-21절은 짧지만, 예수님의 뜻과 권위, 제자들의 반응과 그 의미를 깊이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우리를 열매 없는 무과화 나무에 주목하는데 특이하게 주님과 제자들과의 이야기는 '너희도 할 수 있다'데 주목합니다.
뿌리째 말라버린 나무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막 11:20)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향해 말씀하신 다음 날, 제자들은 그 나무가 단지 잎사귀만 시든 것이 아니라, 뿌리부터 말라버린 것을 보게 됩니다. 헬라어 본문에 따르면 “ἐξηραμμένην ἐκ ῥιζῶν”(엑세라멘렌 엑 리존)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데, 이는 그 나무의 마름이 단순한 시듦이 아니라,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 뿌리부터 마른 나무는 다시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이 장면은 고난주간의 흐름 안에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님께서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실제로는 열매 없는 신앙, 곧 위선적 종교 체계를 정면으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성전 정결 사건과도 연결되며, 무화과나무는 단지 식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에서 멀어진 이스라엘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무화과나무의 저주는 단지 식물 하나를 향한 분노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백성의 삶에서 열매 없는 외식과 형식적 신앙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징입니다. 예수님은 외적으로는 종교 행위를 하고 있지만, 실제 삶의 열매가 없는 자들을 경고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이 던져집니다. “너의 신앙에는 열매가 있는가?”
베드로의 반응과 제자의 시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라삐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막 11:21)
이 구절은 매우 인간적인 반응을 담고 있습니다. 제자들 중 베드로가 가장 먼저 이 사건을 인지하고, 예수님께 반응을 보입니다. “생각이 나서”라는 표현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이전의 말씀이 현실로 드러났음을 인식한 것입니다. 그는 전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고, 그 말씀이 실제로 이뤄진 것을 확인하며 놀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랍비여'라는 호칭은 존경의 표현이지만, 동시에 다소 놀람과 두려움이 담긴 반응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단지 신기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 곧 말씀대로 되어지는 그 능력을 실감하며 입을 연 것입니다. 그 반응은 경외의 반응이며, 동시에 제자로서 배움의 자리로 자신을 세우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베드로의 반응은 우리에게 중요한 신앙의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보고도 여전히 반응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혹은 주님의 경고의 말씀을 단지 하나의 설교나 교훈으로만 듣고 넘기지는 않았는지요?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시고, 그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말씀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깨닫고 있는지, 그것에 반응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은 말씀의 경외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도덕적 가르침이 아닙니다.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으며, 우리의 삶을 꿰뚫습니다. 고난주간에 다시 한 번 이 말씀 앞에 진지하게 서야 합니다. 말씀이 정말 내 삶에서 권위 있는 음성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아니면 들은 척만 하고 내 욕심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뿌리까지 마르게 하시는 이유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그것이 뿌리까지 마르게 하신 이유는 단순히 경고를 넘어서,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무화과나무가 마른 다음, 예수님은 곧 제자들에게 믿음과 기도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즉, 죽어야 할 것은 죽고, 그 위에 다시 살아야 할 것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 주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외형을 정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뿌리부터, 본질부터 새롭게 하십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때로 무너지는 것 같지만, 그것 없이는 진정한 회복이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외형만 손질하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중심이 바뀌어야 하고, 뿌리가 달라져야 합니다.
고난주간은 그런 의미에서 신앙의 뿌리를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신앙의 뿌리는 어디인가? 정말 말씀인가, 복음인가, 아니면 나의 자아와 종교적 습관인가? 예수님은 그 뿌리까지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마땅히 마를 것은 마르게 하시고, 다시 심을 것은 심으십니다.
어느 날 한 성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 신앙이 자꾸 흔들리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 말에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흔들리는 게 아니라, 주님이 뿌리를 흔드시는 겁니다. 깊이 뿌리 내리지 않은 자아신앙을 주님이 마르게 하시는 중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로 주님은 우리 안의 거짓된 뿌리를 말리십니다. 내가 의지했던 사람, 인정받으려 했던 습관, 형식적 경건, 자기의. 그것들이 드러나 말라버릴 때, 우리는 진짜 믿음의 뿌리를 다시 찾아가게 됩니다. 고난은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선한 간섭입니다.
결론: 지금이 뿌리를 살필 때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0-21절의 무화과나무 사건은 겉이 아니라 뿌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열매 없는 겉모습에 속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뿌리를 보십니다. 그리고 그 뿌리가 잘못되었을 때는, 뿌리까지 말려서라도 새롭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회복은 철저한 죽음 이후에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그런 죽음을 통과하는 길이었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완전히 끊기심으로써, 부활의 새 생명이 열리는 길을 여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동일한 과정을 걷게 됩니다. 믿음의 뿌리가 말씀에 있지 않다면, 우리는 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뿌리가 그리스도 안에 심겨져 있다면, 비록 지금은 겨울 같고 말라 있는 것 같아도, 반드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은 내 신앙의 뿌리를 다시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이미 말라 있는 것은 아닌지, 형식은 유지하고 있지만, 열매 없는 가지는 아닌지 돌아봅시다. 그리고 다시 말씀 앞으로 나아가 뿌리를 내립시다. 주님은 지금도 그 무화과나무 앞에 서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을 가져라. 뿌리를 다시 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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