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수) 마 26:3-5 악한 모의
어둠 속에 짜인 빛의 섭리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마 26:3-5)
고난주간의 시작점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 따라갑니다. 십자가로 향하는 그 걸음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것이 아닙니다. 은밀한 계획, 어둠의 회의 속에서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은 그러한 배경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그 안에 담긴 고난의 신비를 묵상하게 됩니다.
어둠의 회합, 빛을 대적하다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마 26:3-4)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예루살렘의 분위기는 숭고한 절기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유월절을 앞둔 거룩한 시기, 백성들은 과거의 출애굽을 기념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한 모의는 그 거룩한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모이다"(συνάγω, synagō)라는 단어는 본래 경건한 회중의 모임이나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집회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 단어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곧 유대의 종교 권력자들이 예수를 제거하기 위한 모의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어 자체의 성격과 그들이 하고자 했던 일 사이의 모순을 드러냅니다. 경건을 가장한 모의, 외적으로는 율법과 전통을 지키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제거하려는 불경함이 꿈틀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중심 인물로 언급되는 가야바는 이미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정치적 해법으로 제시한 인물입니다. 그는 예언적으로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요 11:50)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겉으로는 민족의 안위를 위한 정치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이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예고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의 악한 동기를 통해서도 결국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섭리를 보여줍니다.
흉계의 논의, 그러나 하나님은 주권자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마 26:4)
여기서 "흉계"로 번역된 헬라어 "δόλος"(dolos)는 ‘속임수, 교활함’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공의로 판단하지 않았고, 정의로 판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하고 제거하려는 이들의 움직임은 거짓과 속임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이는 사탄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보여주셨던 진리의 말씀과 권능의 행위는 그들에게는 불편함과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분의 존재는 그들의 종교적 위선을 들추는 빛이었고, 그 빛을 없애기 위해 어둠의 흉계를 꾸몄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신 듯 보이지만, 실상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셨습니다. 흉계를 꾸미는 인간의 계획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 신학이 강조하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사람들은 자유의지로 악을 도모하지만, 하나님은 그 악한 계획조차도 당신의 선하신 뜻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단순한 희생이나 억울한 죽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계획하신 구속의 역사이며,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원하여 감당하신 대속의 길이었습니다. 흉계는 있었지만, 그 흉계를 넘어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마치 요셉이 형들의 시기로 인해 팔려갔지만 그것을 통해 애굽의 구원이 이루어진 것처럼,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작정된 역사였습니다.
때를 알다, 때를 넘다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마 26:5)
그들은 민란을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 그분의 기적과 가르침에 감동한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공개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명절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예수님은 바로 그 명절, 유월절에 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인간은 그 때를 피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 때를 사용하셨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을 받은 날입니다. 하나님은 그 피를 보고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게 하셨습니다(출 12:13). 그런 유월절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세례 요한이 말했던 것처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희생의 제물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계산과 시간표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인간의 두려움이나 모의에 의해 바뀌지 않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민란을 피하기 위해 조용히 일을 처리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유월절의 중심에서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확한 시간표였고, 오랜 세월 선지자들을 통해 예고하신 구속의 날이었습니다.
십자가를 향한 신실한 걸음
고난주간을 보내는 우리는 다시 이 말씀 앞에 섭니다. 세상의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하나님의 섭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음을 이 본문은 증거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회합, 그 속임수와 두려움, 그리고 인간의 계획은 결국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루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과정을 아셨지만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모든 모욕과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누리고 있다면, 이제는 우리도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외적으로는 경건을 가장하되 속으로는 자기 중심의 길을 걷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길을 걷는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고난주간의 시간은 단순한 기념이 아닙니다. 우리 삶 속에서 다시금 십자가 앞에 서는 결단의 시간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 인간의 연약함, 예수님의 순종을 깊이 새기며, 오늘도 그분의 사랑에 감사하고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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