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목) 요 13:1-17 세족식
발을 씻으신 사랑
고난주간, 십자가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예수님의 마음은 더욱 깊어집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부터 17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섬김의 본을 보이신 행위가 아니라, 사랑의 본질을 드러내시고 제자들을 거룩으로 부르시는 신적 겸손의 절정입니다. 그 손에 들린 수건과 물동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표징입니다.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6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
본문은 “6월절 전에”라는 시간적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6월절은 단순한 절기가 아니라, 어린 양의 피로 죽음이 넘어갔던 구원의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참된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실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마음을 이렇게 전합니다.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여기서 ‘끝까지’로 번역된 헬라어는 "εἰς τέλος"(eis telos)로, 단순한 시간적 의미 그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하게’, ‘온전히’, ‘한계 없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한계 없이, 완전하게, 끝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 표현은 십자가의 죽음까지 감당하신 그 사랑의 깊이와 결단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자기 사람들’이라는 표현도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향해 오셨지만, 세상 모두가 그분을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의 제자들, 곧 택하신 자들을 ‘자기 사람’이라 부르시며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언약적 사랑을 반영하는 표현입니다. 개혁주의는 구속의 은혜가 하나님의 선택에 기반함을 강조하며, 바로 이 사랑이 예수님의 행동을 이끌고 있음을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수건을 두르시고, 발을 씻기시다
“저녁 먹는 중에…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요 13:2-5)
예수님의 발 씻김은 유대 문화 속에서 가장 낮은 종이 맡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 중 누구도 서로의 발을 씻기려 하지 않았을 때, 주님께서 조용히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두르십니다. 여기서 ‘겉옷을 벗으시고’라는 행위는 자발적인 낮아짐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서 영광을 누리실 수 있으셨지만, 오히려 종의 형체를 입고 자기를 비우셨습니다(빌 2:6-7 참조).
헬라어로 ‘씻다’는 단어는 "νίπτω"(niptō)로, 부분적인 세정에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이는 몸 전체를 씻는 것과는 다른, 특정 부위를 정결하게 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그들의 더러움과 피로함, 삶의 길에서 묻은 죄악의 흔적을 닦아내고자 하셨습니다. 단지 물리적인 청결이 아니라, 영적인 정결함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지만, 그 안에 담긴 영적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무릎을 꿇고, 흙먼지 묻은 인간의 발을 붙잡고 씻기시는 이 행위는, 단순한 섬김의 교훈을 넘어선 복음의 중심입니다. 예수님은 이 섬김을 통해 제자들의 더러운 마음까지도 닦아내시려 하셨습니다. 우리의 내면에 쌓인 자만과 이기심, 더러움과 숨김들을 향해 예수님은 수건을 드시고 다가오십니다.
나를 씻기지 마옵소서, 그러나 다 씻어주소서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요 13:6-8)
베드로는 예수님의 행동에 당황합니다. 감히 스승이 종의 일을 한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한 어조로 말합니다.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여기서 ‘상관이 없다’는 말은 단순히 관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구원의 연합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정결케 하심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구원의 생명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태도를 바꿔, 머리와 손도 씻어 달라 요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여기서 ‘목욕하다’는 헬라어는 "λούω"(louō)로, 전신을 깨끗이 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는 칭의(稱義), 곧 구원의 본질적 깨끗함을 의미하며, 이후의 발 씻김은 성화(聖化)의 과정을 나타냅니다.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세상의 먼지와 죄악으로 발이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복적으로 주님의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 말씀과 기도의 자리, 성찬의 순간들이 바로 우리의 영혼을 씻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칭의하셨을 뿐 아니라, 날마다 성화로 이끄시며, 거룩한 신부로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결론
요한복음 13장의 발 씻김 사건은 고난주간의 영적 전환점입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은 섬김과 사랑, 그리고 정결의 의미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본보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이고, 십자가 공동체의 본질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요 13:15,17) 섬김은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행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이며, 성도는 매일 발을 씻기듯 이웃의 삶을 어루만져야 할 부름을 받았습니다.
고난주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주님은 수건을 들고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 음성 앞에 우리는 겸손히 무릎 꿇어야 합니다. 나의 더러움을, 나의 교만함을, 나의 거짓과 위선을 모두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그분의 손에 의해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그 은혜를 깊이 누릴 때, 우리는 또한 주님의 본을 따라 수건을 들고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가 섬기는 자리로 나아가기를, 그리고 주님의 그 끝없는 사랑을 흘려보내는 자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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