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목) 마 26:20-29 마지막 만찬
찢긴 떡과 흘린 잔, 언약의 밤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26:20-29
고난주간의 깊은 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탁에 앉으십니다. 마태복음 26장 20절부터 29절까지의 이 본문은 단순한 만찬의 장면이 아닙니다. 배신과 사랑, 고통과 언약이 교차하는 이 밤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절정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이며, 우리를 위한 언약의 피가 준비되는 신비의 자리입니다.
배신의 예고, 슬픔 속에 드러나는 진실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시니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마 26:20-21)
밤이 저물었습니다. 시간은 점점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주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식탁에 앉으십니다. 단순한 식사가 아닙니다. 함께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그 친밀한 식탁의 한복판에서, 예수님은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그 말씀은 제자들의 마음을 뒤흔듭니다.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마 26:22). 이들의 반응은 단순한 놀람이 아닙니다. '몹시 근심하여'라고 번역된 헬라어 "λυπέω"(lypeō)는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비통함과 고뇌를 나타냅니다. 제자들 각자가 자신의 연약함을 자각하며, 혹여 내가 그런 자가 아닐까 두려워 묻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인간적인 모습, 두려움과 연약함,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불확실함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마 26:23). 이는 단지 식사의 예절이 아니라, 같은 식탁을 나누는 가장 가까운 관계, 즉 친구의 배신을 의미합니다. 시편 41편 9절에서 다윗은 말합니다.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예수님은 그 말씀의 성취로, 친구의 배신을 통과하십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마 26:24).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우연도, 불의의 결과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언대로, 구속사의 시간표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자의 죽음은 말씀의 성취이고, 하나님의 뜻의 진행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은 유다의 책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인간의 책임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는 개혁주의가 강조하는 이중 진리, 곧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책임의 조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찢긴 떡, 나를 위한 몸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 26:26)
식사의 중심은 떡으로 향합니다. 예수님은 떡을 들고 축복하신 후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십니다. 유대인의 전통적인 유월절 식사에서 떡은 고난의 빵이었고, 출애굽의 급박함 속에서 누룩 없이 구운 무교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밤에 예수님은 떡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십니다. "이것은 내 몸이니라."
떡을 떼어 나누신다는 것은 단지 음식을 나누는 행위가 아닙니다. 헬라어 "κλάω"(klaō)는 '부수다, 찢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이 찢기고 부서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찢긴 몸이 제자들에게 '주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의 몸이 찢기신 사건, 그 십자가의 고난이 곧 우리에게 생명이 되었다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자신을 기념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받아서 먹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능동적 참여를 요구하는 명령입니다. 주님의 희생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은혜의 실재입니다. 떡을 먹는 것은 그분과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분의 생명을 내 안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성찬의 신비를 발견합니다. 성찬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성찬을 통해 실제로 성령께서 믿는 자 안에 그리스도를 임재하게 하신다고 고백합니다. 그 떡은 단순한 떡이 아닙니다. 그 안에 주님의 사랑과 희생이 담겨 있으며, 우리는 그 떡을 받을 때마다 다시금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언약의 잔, 흘림의 피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7-28)
예수님은 떡에 이어 잔을 드십니다. 헬라어로 "ποτήριον"(potērion)은 잔을 의미하지만, 종종 고난과 심판의 상징으로도 사용됩니다. 구약에서 잔은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하는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잔을 감사함으로 드십니다. 왜냐하면 이 잔은 이제 하나님의 진노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잔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잔을 "언약의 피"라 하십니다. 여기서 언약은 출애굽기 24장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세운 피의 언약을 상기시킵니다. 모세가 희생 제물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며 말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이제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십니다.
그 피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제한된 범위를 뜻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포괄하는 구속의 은혜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피는 단순한 유혈 사건이 아닙니다. 구속의 피이며, 죄 사함의 근거이며, 새 언약의 기초입니다.
또한 중요한 점은 예수님이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고 하신 것입니다. 떡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잔은 단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받아 마셔야 하는 은혜입니다. 이는 신앙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참여와 응답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매번 성찬의 잔을 받을 때마다, 다시금 그 은혜의 깊이와 넓이를 체험하게 됩니다.
결론
마태복음 26장 20절부터 29절까지의 본문은 고난주간을 지나며 우리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거룩한 장면입니다. 이 식탁은 단지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 속에 살아 움직이는 언약의 실재입니다. 예수님은 배신과 고통을 아시면서도 그 식탁에 앉으셨고, 찢긴 몸과 흘린 피를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고, 구속이었으며, 하나님의 계획된 섭리였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이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주님을 팔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우리는 종종 그분보다 세상을 선택하며, 언약의 잔보다 세상의 만족을 더 가까이 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 식탁은 다시금 우리를 부르십니다. 돌아오라고, 회개하라고, 다시금 받아 먹고 마시며 주님과의 언약을 새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난주간, 우리는 이 찢긴 떡과 잔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안에 담긴 주님의 피와 살, 사랑과 고난을 깊이 새기며, 그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도록 날마다 주 앞에 무릎 꿇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언약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그 잔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구속의 증표입니다.
'성경해석 > 짧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난주간 묵상 토) 마 27:62-66 무덤을 지킨 사람들 (0) | 2025.03.27 |
---|---|
고난주간 묵상 금) 마 27:27-31 조롱 받으시는 예수님 (0) | 2025.03.27 |
고난주간 묵상 금) 마 26:69-75 베드로의 부인 (0) | 2025.03.27 |
고난주간 묵상 목) 요 13:1-17 세족식 (0) | 2025.03.27 |
고난주간 묵상 목) 마 26:17-19 유월절 준비 (0) | 2025.03.27 |
고난주간 묵상 수) 유다 예수를 팔다 (0) | 2025.03.27 |
고난주간 묵상 수) 마 26:3-5 악한 모의 (0) | 2025.03.27 |
고난주간 묵상 화) 악한 농부의 비유 (0) | 2025.03.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