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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묵상 목) 마 26:17-19 유월절 준비

하가다 202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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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된 자리, 순종의 식탁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마 26:17-19)

 

고난주간의 중심에는 한 끼의 식사가 자리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습니다. 유월절 만찬은 과거의 구원을 기념하고, 현재의 언약을 되새기며, 장차 완성될 구속을 예표하는 깊은 의미의 시간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17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은 그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예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그 뜻을 따라 순종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제 이 본문을 묵상함으로 십자가를 향해 점점 가까이 나아가는 주님을 묵상하길 원합니다.

 

유월절의 기억, 새로운 시작의 문턱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마 26:17)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민족의 정체성과 신앙의 뿌리를 확인하는 절기였습니다. 출애굽기 12장에서 명하신 대로, 해마다 무교절과 함께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절기였고, 어린 양의 피로 죽음을 넘어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유월절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의례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잇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되새기는 순간이었습니다.

 

본문은 "무교절의 첫날"이라고 시작합니다. 이는 유월절 양을 잡는 날을 가리키며, 본격적인 절기의 시작을 알립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어디서 유월절을 준비할지를 묻는 장면은, 이 절기를 정중하고 경건하게 지키려는 그들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그 질문은 예수님의 뜻과 계획을 구하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주도하에 모든 것을 준비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유월절 식사의 장소조차 자신들이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먼저 묻고,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는 신앙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지만, 그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는 길은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만 합니다. 제자들은 단순히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동참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대로 예비된 자리

"이르시되 성 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마 26:18)

 

예수님은 구체적인 장소와 메시지를 제자들에게 알려주십니다. "성 안 아무에게 가서"라는 표현은 마치 무작위로 보이지만, 이는 누가복음 22장에서 더 자세히 나타나듯이 예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사람과 장소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아무에게"는 실제로는 예비된 사람이며, 이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때가 가까웠으니". 여기서 "때"는 헬라어 "καιρός"(kairos)로, 단순한 시간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결정적인 시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는 고난의 길, 십자가의 순간이 가까이 왔다는 선언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때, 구속의 역사가 완성될 바로 그 시간이 임박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겠다". 이 말씀 속에는 공동체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예수님은 마지막 식사를 제자들과 나누기 원하셨습니다. 이는 새 언약을 맺는 식탁으로 이어지며, 교회의 원형이 되는 공동체적 친교를 예표합니다. 고난과 죽음 앞에서도 예수님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계시길 원하셨고, 그 자리를 친히 예비하셨습니다.

 

예비된 식탁, 예비된 사람, 예비된 말씀.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 준비된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제자들은 순종으로 나아갑니다. 말씀을 따라 준비된 자리로 나아갈 때, 우리는 주님과 가장 깊은 교제를 나누는 자리가 됩니다.

 

순종의 걸음, 은혜의 식탁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마 26:1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시키신 대로 준비합니다. 여기서 "시키신 대로"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서 "καθὼς συνέταξεν"(kathōs synetaxen)으로, ‘지시하신 그대로’라는 의미입니다. 즉 그들은 자신의 방식이나 판단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유월절을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순종을 넘어서는 깊은 신앙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신앙은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따라 삶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비한 유월절 식탁은 곧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성찬의 자리가 되며, 십자가의 의미를 직접 마주하는 신비로운 공간이 됩니다.

 

순종의 걸음이 우리를 은혜의 식탁으로 인도합니다. 신앙의 길에는 이해되지 않는 순간도 많고, 때로는 감정이 따라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이는 그 걸음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제자들은 그날이 단지 유월절의 전통을 지키는 날인 줄 알았겠지만, 그 식탁에서 주님은 새 언약을 선포하십니다. 그들은 은혜의 깊이를 그날 밤 알게 되며, 고난을 통과한 후에 그 의미를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도 주님이 예비하신 자리가 있습니다. 때로는 그 자리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주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면 그 자리는 하늘의 신비가 임하는 자리가 됩니다. 성찬의 은혜가 임하고, 십자가의 사랑이 새겨지는 자리가 됩니다.

 

결론

마태복음 26장 17-19절은 짧은 본문이지만, 매우 깊은 신학적 의미와 묵상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준비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신자들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집니다. 주님을 모시기 위한 우리의 준비는 어떤가?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걸음을 걷고 있는가? 주님의 때를 알고, 그 섭리를 신뢰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그 때가 가까움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두려움으로 숨지 않으셨고, 오히려 사랑하는 제자들과의 식탁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식탁은 단지 음식의 자리가 아니라, 영원의 문턱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자리에 말씀대로 순종하며 나아갔고, 그 자리에서 구원의 언약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난주간을 보내며 우리는 다시 이 식탁 앞에 섭니다.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자리, 말씀을 따라 순종할 때 열리는 은혜의 자리에 우리도 함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식탁 위에 주님의 살과 피가 놓여 있고, 그 은혜를 기억하는 우리들의 고백과 감사가 올려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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