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수) 유다 예수를 팔다

은 삼십, 배신의 값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마 26:14-16)

 

고난주간을 지나며 묵상하게 되는 사건 중 가장 뼈아픈 장면은 주님을 팔기로 작정한 가룟 유다의 결정입니다. 마태복음 26장 14절부터 16절은 유다의 배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짧은 본문 속에는 인간의 탐욕과 불신,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가 교차하는 깊은 영적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고난주간에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예수님을 판다’는 행위가 단지 유다의 문제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의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음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거래의 시작, 마음을 판 사람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마 26:14-15상)

 

본문은 유다의 행동을 매우 간결하게 기술하지만 그 안에는 내면의 깊은 변화가 감지됩니다. ‘그 때에’라는 접속어는 앞선 본문과의 연결을 보여줍니다. 바로 앞선 마태복음 26장 6-13절에서 한 여인이 향유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드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그 아름다운 헌신은 제자들 중 몇 사람에게는 ‘허비’처럼 보였고, 그 중에서도 유다는 그 일에 강한 반감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요 12:4-6 참고).

 

유다는 예수님의 길이 자신이 기대했던 메시아의 길이 아님을 점점 깨닫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혁명적 정치 지도자로서의 메시아를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지셨고,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유다는 점차 자신의 기대와 어긋나는 예수님을 보며 실망과 냉소를 쌓아갔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마음을 정하고 예수님을 넘기기로 결심합니다.

 

여기서 "넘겨 주리니"로 번역된 헬라어 "παραδίδωμι"(paradidōmi)는 단순한 배신의 행위만이 아니라, 법정에 넘기다, 포기하다, 내어주다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단지 팔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스승이자 주님이신 분을 세상의 권력 앞에 넘긴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은삼십의 거래가 아니라, 마음의 주인을 바꾸는 심각한 영적 붕괴를 보여줍니다.

 

값의 무게, 은 삼십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마 26:15하)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 위해 받은 값은 은 삼십입니다. 이는 구약의 출애굽기 21장 32절에 언급된 금액으로, 종이 다쳤을 때 물어주는 보상금에 해당합니다. 이 금액은 천한 값이며, 인간 생명의 존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금전적 환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종의 값으로 팔리신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유다의 선택이 값싼 배신이라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낮은 값으로 예수님을 팔리게 하셨다는 섭리적 의미가 있습니다. 스가랴 11장 12-13절을 보면, 이 은 삼십이 이미 예언된 바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것을 토기장에게 던지라…” 이는 마태복음 27장에서 유다가 돈을 성전에 던진 뒤 토기장이의 밭을 사게 되는 사건으로 이어지며,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히 성취됩니다.

 

값은 중요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 값이 무엇을 상징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가치를 자신의 기대와 욕망으로 환산했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메시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고, 차라리 적절한 금전적 이익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유다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은 삼십이라는 그 선택은 곧 유다 인생 전체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전환점이 됩니다. 인간의 탐욕과 자기중심적 계산이 영원을 잃는 지점이 된 것입니다.

 

기회를 엿보는 자, 거룩을 파는 자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마 26:16)

 

유다는 값을 받았고, 이제 기회를 찾습니다. 여기서 "기회를 찾다"는 헬라어 "ζητέω"(zēteō)는 ‘열심히 찾다’, ‘갈망하다’는 뜻이 담긴 단어입니다. 단순히 좋은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기회를 찾아 나섰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를 넘겨줄 타이밍을 찾는 그의 마음은 이미 사탄에게 사로잡힌 상태입니다.

 

누가복음 22장 3절은 이 시점에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기록합니다. 단순한 심리적 동요나 개인적 실망이 아니라, 영적 침투와 악의 세력의 장악이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유다는 자신의 의지를 따라 예수님을 팔았지만, 그 배후에는 사탄의 세력과 어둠의 권세가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결코 중립적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사탄의 통치 아래에 놓인 인간의 영적 상태를 드러냅니다.

 

거룩을 판 사람, 사랑을 팔아버린 사람,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눈앞의 이익과 바꿔버린 사람이 바로 유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단순한 ‘배신자’로만 정죄하고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도 예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은 삼십이 될 수 있습니다. 명예, 돈, 인정, 욕망… 그 어떤 것이든 예수님보다 우선한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유다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결론

마태복음 26장 14-16절은 단지 유다의 비극적인 선택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모든 신자가 고난주간에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과 같은 본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값싼 은 삼십에 팔리셨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고귀한 구속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유다의 선택은 악했지만, 하나님은 그 악을 통해 선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거절당하셨고 팔리셨고 외면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거절은 우리가 받아들여지게 하기 위함이었고, 그 팔림은 우리가 구원받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고난주간을 지나는 우리는 다시금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있지는 않은지, 예수님의 가치를 세상적인 계산으로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 말씀 앞에 서서 다시금 결단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은 삼십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가치는 세상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가 잴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다시금 주님을 주님 되게 모시는 고난주간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