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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잡초의 미학

하가다 2021.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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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같다는 말을 한다. 

쓸모없는 인생, 무의미한 인생을 말한다. 뭐 무의미까지는 아니지만 가치가 낮다는 뜻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도 해석된다. 야무지다. 적응력이 강하다.가 그렇다.

잡초 같은 인생이라고 말하면, '별 볼일없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는 과거를 전제한다.

 

 

밤새 궁싯거렸다.

뜬 눈으로 삶의 의미를 캐고, 살아야 할 이유를 물었다. 생각이 좀처럼 떠나지 않으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삶이 잡초 갔다. 아니 잡초처럼 살았다.

 

어린 시절,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 가난함에 자존심은 한 없이 낮았다. 겨울에 가을 옷을 입었고, 여름엔 봄 옷을 입었다. 긴 팔티 하나로 사계절을 버텼다.

수학경시대회를 가늘 날,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기현아 잠바 없어? 안추원?"

 

"네 안 추워요. 늘 이렇게 입는걸요."

 

정말 안 추었다. '추워요'라고 말하면 추월 질 것 같아서 '안 추워요'라고 말했다. 추운 줄 몰랐다. 너무 부끄러워서. 몸의 추위보다 마음의 추위가 심한 탓에 몸의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시험을 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는 마을에서 반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섰다.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소다. 10여분을 걸어야 집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리자 겨울바람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추웠다. 많이... 입에서 '으스스스' 소리가 나온다. 아래턱이 윗턱과 부딪히면서 뜨득 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버스에서 잠바를 입고 있지 않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집에 도착했으나 방을 찼다. 안방만 굼불을 때는 터라 작은 방은 냉방이었다. 명절이 오지 않으면 작은 방은 늘 차가웠다. 다행히 두꺼운 솜이불이 있어 씻지도 않고 덮고 누웠다. 수학경시대회가 뭔지 모르는 부모님들은 내가 어디 갔다 왔는지도 모르고 묻지도 않았다. 방이 차가운 건 견디겠지만 마음이 추운 건 참기 힘들었다.

얼마 후 뜨거운 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밤새 궁싯거리다 다음 날을 맞이했다.

 

길을 걷다 잡초를 본다. 콘크리트 갈라진 틈 사이로 잘도 자란다. 뿌리를 얼마나 깊이 내린 걸까? 두 달 동안 비가 오지 않아도 말라죽지도 않는다. 잡초구나!

참 오래 살았다. 찹초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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