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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기도, 수요일

하가다 202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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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고난주간의 수요일,
오늘은 이상할 만큼 조용합니다.
복음서의 기자들은 이 날, 당신이 무엇을 하셨는지 기록하지 않았고,
어떤 기적도, 어떤 설교도, 어떤 논쟁도 성경에는 남겨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시간조차 숨죽인 듯, 하늘도 말을 아끼는 날,
저는 이 거룩한 침묵 앞에 엎드려 묵상합니다.

주님,
당신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종려나무 가지의 환영을 받던 그 열기 뒤편에서,
성전을 뒤엎고 진리를 선포하시던 그 격렬함 뒤에,
이 침묵의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계셨습니까?

사람들은 말합니다.
당신이 조용한 마을 어귀에서 제자들과 담소를 나누셨을 것이라고,
또 어떤 이는 그날도 여전히 사람을 고치고 말씀을 전하셨으리라 짐작합니다.
아마도 눈먼 자를 어루만지셨을 것이고,
잃어버린 자의 마음에 조용히 말씀의 씨앗을 심으셨겠지요.

하지만 정작 기록된 것은 하나,
당신의 적들이 조용히 모여,
당신을 죽이기로 음모를 꾸미고,
당신의 제자 중 하나, 가룟 유다가 은 삼십에 당신을 팔기로 마음을 정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
당신이 침묵하신 그 시각,
세상은 분주히 어둠을 짜고 있었습니다.
진리는 잠시 멈춘 듯했고,
거짓은 조용히 발톱을 세웠습니다.
당신은 설교를 멈추셨지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작당하고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
그도 당신의 손에서 떡을 먹었던 자입니다.
수많은 기적을 목격했고,
밤마다 함께 불을 쬐고, 주의 음성을 들었던 자입니다.
그가 은 삼십에 당신을 판다는 이 비극은,
참으로 값싼 배신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의 모든 탐욕과 불의가 짜낸, 철저히 계산된 악의 연합이었습니다.

주님,
이 수요일의 침묵 속에서 저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당신을 죽이려는 자들의 모의가 어두운 골방에서 이루어질 때,
당신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그 음모를 받아들이시려는 듯,
묵묵히 기다리셨습니다.
주님의 침묵은 두려운 힘입니다.
그 침묵은 결코 무기력이 아니요,
하늘의 의도를 향한 깊고 단단한 동의였음을 저는 깨닫습니다.

악은 손을 맞잡고 있었고,
거짓은 힘을 얻고 있었습니다.
진리는 고요했으나, 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설계도는 가장 정교하게 완성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주님, 당신은 아무 말씀 없이 십자가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날의 침묵을 연약함이라 여겼고,
그날의 무대 뒤편을 실패의 예감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님,
당신은 그 어둠을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아셨고,
모든 것을 감당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주님,
저는 때때로 세상이 너무도 악해 보일 때,
당신의 침묵이 두렵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진리를 말해도 조롱받는 세상 속에서
정의는 멀어지고, 악이 승리하는 듯한 현실 앞에서,
당신은 여전히 말씀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배웁니다.
당신의 침묵은 패배가 아니고,
당신의 기다리심은 준비임을.
악의 동맹이 아무리 강력해 보여도,
하나님의 섭리는 더욱 크고 깊게 작동하고 있음을.
어둠은 소리 없이 움직이지만,
빛은 결코 지지 않음을.

오늘 이 수요일,
저도 주님처럼 말 없이 기도하고 싶습니다.
적은 말로 더 깊이 순종하고,
설명보다는 믿음으로 견디고,
항변보다는 믿음으로 묵묵히 동행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세상의 소리가 아무리 요란해도,
당신은 여전히 이 역사의 주인이시며,
모든 음모와 배신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도,
대제사장들의 음모도,
장로들의 모함도,
결코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었으며,
오히려 구원의 길을 열어가는 연장선이었음을 저는 믿습니다.

주님,
저도 그 믿음의 고백 속에 오늘 하루를 드립니다.
말없이 믿고,
말없이 따르고,
말없이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있는 부활의 영광을,
소망으로 품겠습니다.

침묵 가운데 일하시는 주님,
당신의 섭리에 내 마음을 맡깁니다.
이 모든 말씀,
진리 되시며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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