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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쓰기, 이정림, RHK

하가다 2021.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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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쓰기

이정림, RHK

수필을 좋아합니다. 읽는 것도 좋아하고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요즘은 수필집을 한 권 내고 싶어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수필에 관련된 책을 한 권 읽고 소개합니다. 이정림의 <수필 쓰기>입니다. 수필 작법을 소개한 책입니다. 긴 설명 없이 곧바로 책 내용으로 들어가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수필이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니다.

다 아시죠? 수필은 절대 아무렇게, 생각나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닙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작자는 많이 생각하고 힘들여 썼을지라도 독자에게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글이 좋은 수필이다."

그렇죠. 편하게 자연스럽게, 하지만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는 글이어야 합니다.

형식이 없는 글이 아니다.

또 하나의 오해는 '형식 없는 글'이란 생각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수필은 철저히 서론 본론 결론이 있습니다. 다만 숨겨져 있을 뿐입니다.

신변잡기가 아니다.

수필은 신변잡기가 아닙니다. 일상을 소재로 하는 것이 수필이라 할지라도 분명한 목적과 의도가 존재합니다. 단순한 기록과 생각을 너머 의미 있는 글, 통찰이 있는 글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저자의 생각을 들어 봅시다.

"수필은 우리의 삶은 의미화하는 문학이다. 의미화하지 않은 삶은 반복되는 일상의 하나일 뿐이다. 생활의 의미화, 그것은 곧 수필이 곧 삶의 철학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필이 뭔가요? 

향기가 있되 진하지 않고, 소리가 있되 요란하지 않으며, 아름다움이 있되 천박하지 않은 글, 이것이 바로 수필인 것이다.

공감이 되시나요? 너무 어렵죠. 저도 어렵네요. 그럼 '아니다'가 아니라 '이다'의 서술로 넘아가 봅시다.

 

수필은

허구가 아닌 사실이다.

바로 이점이 소설과 차이점입니다. 소설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분명한 차이점이죠.

1인칭 시점의 문학이다.

수필은 화자는 '나'입니다. 주제가 타인을 관찰하는 내용이든, 내가 경험한 것이든 하여튼 '나'가 화자이어야 합니다.

 

수필의 종류, 중수필과 경수필이 있죠. 그냥 넘어갑시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좀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 내용을 살펴봅시다.

 

좋은 수필의 6가지 조건

수필의 언어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수필의 문장은 간결하고 소박하고 평이해야 한다.

수필의 미문은 화려함을 경계하라. 다시 말해 소박하게 써라.

수필의 표현은 간결해야 한다.

수필의 감정은 풍부하되 원색적으로 표현하지 말라.

수필의 소재는 감을 믿어라.

사실 수필이란 이론적인 내용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수필 쓰기는 어렵습니다. 아니죠. 쓰기는 쉽지만 제대로 된 수필은 쉽지 않습니다. 일기와 수필의 차이를 혹시 아시나요? 저자는 3장에서 '수필, 어떻게 써야 할까?'를 다룹니다. 

서두, 구성, 문단, 결미, 제목, 퇴고 등을 말하네요. 하지는 책 내용은 직접 읽어 보십시오. 여기서부터 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무엇이 수필인가?

이론적인 이야기 말고. 진짜.. 수필이 뭘까요? 이렇게 물으면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럼 간단합니다. 진자 수필을 읽어 보십시오. 수필을 배울 때는 가능한 최신 수필을 읽지 말고 7-90년대 수필을 중심으로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쓰라는 말이 아니라 기본 구성이나 문장들을 살펴보라는 말입니다. 짧지만 강력한 계용묵(桂鎔墨)의 수필, <구두> 읽고 잠깐 살펴봅시다. 나중에 더 많은 수필을 풀어내고 오늘은 '구두'만 간략하게 살펴봅시다. 먼저 읽어 보십시오.

 



구두 수선(修繕)을 주었더니, 뒤축에다가 어지간히는 큰 징을 한 개씩 박아 놓았다. 보기가 흉해서 빼어 버리라고 하였더니, 그런 징이래야 한동안 신게 되고, 무엇이 어쩌고 하며 수다를 피는 소리가 듣기 싫어 그대로 신기는 신었으나, 점잖지 못하게 저벅저벅, 그 징이 땅바닥에 부딪치는 금속성 소리가 심히 귀 맛에 역(逆)했다. 더욱이, 시멘트 포도(鋪道)의 딴딴한 바닥에 부딪쳐 낼 때의 그 음향(音響)이란 정말 질색이었다. 또그닥또그닥, 이건 흡사 사람은 아닌 말발굽 소리다.


어느 날 초으스름이었다. 좀 바쁜 일이 있어 창경원(昌慶苑) 곁 담을 끼고 걸어 내려오노라니까, 앞에서 걸어가던 이십 내외의 어떤 한 젊은 여자가 이 이상히 또그닥거리는 구두 소리에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으로, 슬쩍 고개를 돌려 또그닥 소리의 주인공을 물색하고 나더니, 별안간 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는 걸 나는 그저 그러는가 보다 하고, 내가 걸어야 할 길만 그대로 걷고 있었더니, 얼마큼 가다가 이 여자는 또 뒤를 한번 힐끗 돌아다본다. 그리고 자기와 나와의 거리가 불과 지척(咫尺) 사이임을 알고는 빨라지는 걸음이 보통이 아니었다. 뛰다 싶은 걸음으로 치마귀가 옹이 하게 내닫는다. 나의 그 또그락거리는 구두 소리는 분명 자기를 위협하느라고 일부러 그렇게 따악딱 땅바닥을 박아 내며 걷는 줄로만 아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여자더러, 내 구두 소리는 그건 자연(自然)이요, 인위(人爲)가 아니니 안심하라고 일러 드릴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어서 가야 할 길을 아니 갈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 나는 그 순간 좀더 걸음을 빨리 하여 이 여자를 뒤로 떨어뜨림으로 공포(恐怖)에의 안심을 주려고 한층 더 걸음에 박차를 가했더니, 그럴 게 아니었다. 도리어, 이것이 이 여자로 하여금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내 구두 소리가 또그닥또그닥, 좀더 재어지자 이에 호응하여 또각또각, 굽 높은 뒤축이 어쩔 바를 모르고 걸음과 싸우며 유난히도 몸을 일어내는 그 분주함이란, 있는 마력(馬力)은 다 내 보는 동작에 틀림없었다. 그리하여 또그닥또그닥, 또각또각 한참 석양 노을이 내려 퍼지기 시작하는 인적 드문 포도(鋪道) 위에서 이 두 음향의 속 모르는 싸움은 자못 그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나는 이 여자의 뒤를 거의 다 따랐던 것이다. 2~3보(步)만 더 내어 디디면 앞으로 나서게 될 그럴 계제였다. 그러나 이 여자 역시 힘을 다하는 걸음이었다. 그 2~3보라는 것도 그리 용이히 따라지지 않았다. 한참 내 발부리에도 풍진(風塵)이 일었는데, 거기서 이 여자는 뚫어진 옆 골목으로 살짝 빠져 들어선다. 다행한 일이었다. 한숨이 나간다. 이 여자도 한숨이 나갔을 것이다. 기웃해 보니, 기다랗게 내뚫린 골목으로 이 여자는 휑하니 내닫는다. 이 골목 안이 저의 집인지, 혹은 나를 피하느라고 빠져 들어갔는지, 그것은 알 바 없으나, 나로서 이 여자가 나를 불량배로 영원히 알고 있을 것임이 서글픈 일이다.


여자는 왜 그리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여자를 대하자면 남자는 구두 소리에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가져야 점잖다는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라면, 이건 이성(異性)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나는 그 다음으로 그 구두 징을 뽑아 버렸거니와 살아가노라면 별(別)한 데다가 다 신경을 써 가며 살아야 되는 것이 사람임을 알았다.


수필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일반인처럼 읽으면 안 됩니다. 구성은 어떤지, 문장은 어떤지, 어떻게 자신의 경험을 풀어나가는지, 왜 이 수필이 명수필로 인정을 받는지를 찬찬히 뜯어가며 살펴야 합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적어볼까요?

 

구두가 망가져 수선집에 맡겼다.

그런데 구두 뒤축에 징을 박았다.

(구두 징을 아시죠? 혹시 모르시면 인터넷에서 찾아보십시오. 그냥 걸으면 징징 소리가 나는 걸 말합니다.)

화자는 징소리가 싫었다.(하지만 빼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다 한 사건이 발생한다.)

창경권 담을 걸을 때 하필 앞서서 한 여성이 걷는다.

그런데 화자의 구두에서 징징 소리가 난다.

여성이 뒤돌아 본다.

이후 여성의 속 마음을 화자가 상상한다. 그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결국 여성은 도망치듯 골목으로 빠진다.

화자는 자신을 불량배로 생각한 것 같아 영 마뜩잖다.

구두 징때문에 생겨 결국 징을 뺐다.

 

결론은 이것이다.

여자는 왜 그리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여자를 대하자면 남자는 구두 소리에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가져야 점잖다는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라면, 이건 이성(異性)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나는 그다음으로 그 구두 징을 뽑아 버렸거니와 살아가노라면 별(別)한 데다가 다 신경을 써 가며 살아야 되는 것이 사람임을 알았다.

 

수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론이다. 물론 결론이 말미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서두에도 나오고 중간에도 나온다. 하지만 결론 문장으로 모든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 구절을 통해 수필의 전체가 흘러간다. 결국 수필을 쓰려는 사람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의 경험을 가져와 풀어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물론 글은 쉽게, 내용은 간결하고, 담백하게, 문장과 감정 표현은 검소하게 써야 한다. 이 책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하여튼 책을 읽어 보자. 그런대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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