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줄의 가사, 이주엽
이 한 줄의 가사, 이주엽
책을 사면 시간이 갈수록 마음을 후려 파는 책이 있고, 피상성에 몸서리치며 던져 버리는 책이 있다. 아둔한 머리를 가진 탓인지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늘 실수한다. 꼼꼼히 살피지 않고 책을 사는 못 된 버릇 때문이기도 하지만 뭔가 이끌려 샀지만 이내 실증나 버리는 책들이 꽤 많다.
가사는 지면이 아니라 허공에서 명멸한다. 써서 읽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르는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운명이다.
문장에 사로잡혔다. 그냥 좋다. 섬세한 저자의 문장들을 심약한 심장의 박동소리를 요동치게 만든다. 저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 그냥 이 책에 담긴 언어의 만찬을 즐기고 싶다.
노래는 분열된 자아사이에서 피는 꽃이다.
시인과 촌장< 가시나무> 해설 중에서
삶이란 무엇인가? 힘겹게 살아왔던 시간을 노래로 풀 수 있을까? 아프지 않은 인생이 있을까? 사연 없는 삶이 있을까? 하지만 언어의 세공사가 정교하게 세공된 언어들은 삶을 빛나게 한다. 딱 이 책이 그렇다.
시와 산문의 경계를 오가는 문장들은 노래가 담은 시대를 시리게 그려낸다. 이쯤되면 저자가 궁금해진다. 누굴까?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토록 고결한 언어로 담담히 풀어낸단 말인가. 64년 생이니 나보다 나이가 많고, 경남 통영이 고향이란다. 참 좋아하는 곳이다. 수년 동안 살았다. 중앙시장, 부둣가, 좁은 골목길.. 그땐 동피랑도 서피랑도 없었다. 오사미 꿀빵도 좁은 골목에서 여학생들만 아는 그런 빵이었다. 과거인 게지. 흘러간 세월인 게지.
그때도 아름다웠고,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다. 아내는 통영은 곧 미수동이다. 미수동에 대한 추억이 통영에 대한 기억을 미수동으로 환원시키고 있는 것이다.
풍경이 사연이 되고, 사연이 풍경이 되는 그곳
- 김현철 <춘천 가는 기차>
그 바람이 이끄는 곳을 따라가면 어느새 춘천이다.
몇 번 가본 춘천, 아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 중의 하나다. 아직 나에겐 낯설고 어색한 공간이다. 낯섦은 경계하게 하고, 익숙함을 좋게 평가하려 하는 판단 왜곡이 일어나게 한다. 저자는 그렇게 춘천을 '풍경과 사연'으로 묶었다.
경춘선에서 누군가를 사랑을 잃고, 누군가는 사랑을 시작할 것이다.
2019년 10월 이었지 아마... 춘천에 잠깐 들렀을 때 공지천 앞 조각공원에서 한참을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석양이 들기 전 떠났지만 춘천은 아름다웠다. 나중에 꼭 춘천역에 들어야겠지.. 꼭 들러야겠지.. 누군가는 사랑의 아픔을, 누군가는 사랑의 기쁨을 맛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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